글 : 정성기 / 노인요양원 이당원 자문위원
어머니의 간병을 시작한 것이 2007년 9월, 1년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그 정도라면 곁에서 직접 간병을 하겠다고 시작한지 10년이 돼간다.
자신 있게 시작했지만 예상보다 길어진 간병 생활, 어머니께 매일 삼시세끼 새로 지은 식사를 해 드리고 어머니 용변을 처리하고 지저분한 빨래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몇 해 전부터 내게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쓰러지고 말았고 사흘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 깨어났다. 내가 입원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머니도 할 수 없이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이렇게 10년간 매일 계속되었던 나의 삼시세끼 취사병과 세탁병 생활은 끝이 났다. 내가 퇴원을 하고 몸을 조금 추스른 어느 날,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아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면서 얼마나 뜨거운 눈물이 흐르던지.
징글맘 수발을 든지 10년째
스무평 남짓 이 조그마한 집에서 어머니와 나는 10년을 함께 살았다. 눈만 뜨면 “애비야, 화장실 급하다” “애비야, 달달한 거 먹고 싶다” “애비야, 등 좀 긁어라” “애비야, 배고프다 배고파 “......” 시도 때도 없이 “애비야”를 불러대던 어머니 때문에 30분만이라도 푹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잠도 오질 않고 책을 읽어도 글자가 도통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자꾸 어머니가 부르시는 것 같다.
결국 나는 또다시 징글맘의 부관병을 자처했다. 이전처럼 하루 24시간을 매달려 악전고투하는 생활은 아니지만 난 오늘도 어머니를 위한 ‘생과일주스’와 ‘연명죽’을 만들어 어머니를 뵈러간다. 어머니는 이제 소화능력이 거의 떨어지셔서 모든 음식을 죽 형태로 갈아드려야 한다. 맛있는 과일과 아카시아 꿀 그리고 우유를 섞어 믹서에 곱게 간 생과일주스를 만들고, 어머니가 평소에 좋아하셨던 요리를 한 후 그곳에 곰국을 넣고 믹서에 곱게 갈아 연명죽을 만든다. 이 두가지를 정성껏 만들어 매일 어머니께 간다.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는 늙은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처럼 웃으신다.
간병의 가장 큰 괴로움은 바로 고독감
누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얼굴한번 찌푸리지 않고 하루 삼시세끼를 직접 해드리면서 어머니를 간병할 수 있었느냐고.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아내와 자식을 떠나 어머니와 지내면서 참 많이 외롭고 고독했다. 어머니는 내가 돌봐드리지만 내가 감기몸살이라도 났을 때는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내가 그 때 느낀 소외감과 고독감은 죽음을 생각하게도 됐었으니까. 새벽마다 난리부르스를 치는 어머니를 향해 ‘어여 그 강을 건너가세요’라고 가슴속 절규를 하는 내 마음은 고통과 죄책감으로 범벅이 되었다. 오죽하면 내가 어머니를 ‘징글맘’이라고 부르게까지 되었겠는가. 만약에 누가 선뜻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직접 간병하겠다고 한다면 말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효자니 불효자니 그런 문제가 아니다. 큰 결심과 노력이 없이는 가족간병은 환자나 보호자 모두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약 나에게 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면 절대로 결심하지 못할 것 같다.
억지로 효자가 될 생각은 버리자
그러나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스스로 자처하든 어쩔 수 없는 입장이든 ‘가족간병’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천하에 없는 효자가 되려고 억지로 애쓰지 않아야 한다. 또 고통을 피하려고 하거나 멍에를 집어 던지려고 발버둥치지도 말아야 한다. 나는 그랬다. 이 시간도 내 인생의 일부이니 자연스럽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어머니를 위해 삼시세끼 요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주부들이 레시피를 물어보는 ‘할배요리사’가 되었고, 어머니와 함께 하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조금씩 메모하다보니 책도 내게 되었다. 억지로 애쓰지 않았고 발버둥치지 않았다. 아주 잠깐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가 “애비야, 나도 이제 그만 살고 싶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구나. 너를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지만 하늘에서 나를 데려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구나....”하시며 내 얼굴을 쓰다듬으신다. 어머니도 알고 계신다. 억지로 애쓰거나 발버둥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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