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송포유’는 죽은 아내를 대신해 합창대회에 나선 남성 노인의 도전을 그리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처럼 가장으로서 평생 일에만 몰두하다 뒤늦게 자신의 적성을 찾아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남성 노인들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지난 1월 18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오남체육문화센터에선 만난 김병제(70) 어르신. 그는 30여 가지 스케이팅 기술을 펼치며 체육관 안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녔다. 7년 전 아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지기도 했던 그가 선보인 회전 동작은 보통 노인의 몸짓과는 달랐다. 피겨여왕 김연아처럼 우아했다.
“노인에겐 위험한 운동” 만류에 “연습하면 된다” 불굴의 도전
예산 남성어르신들은 댄스스포츠팀 결성… 각종 대회 휩쓸어
최근 국내에서 건장한 성인 남성도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댄스스포츠, 익스트림스포츠(스피드와 스릴을 만끽하며 여러 가지 묘기를 펼치는 신종 모험 레포츠) 등을 통해 활동적인 노후를 만끽하는 노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바다수영에도 일가견이 있는 김병제 어르신은 현재 자타공인 국내 최고령 슬라럼 인라인스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슬라럼이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장애물 사이를 음악에 맞춰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며 지나다니는 경기를 말한다. 시니어부문이 따로 없어 수상과 인연은 없지만 김 어르신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그가 스케이트화를 신게 된 건 퇴행성관절염 때문이다. 10여 년 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김 어르신은 당시 주치의의 권유로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주치의에 따르면 퇴행성관절염은 완치가 불가능해 다리 근육을 키워 극복해야 하는데 스케이트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김 어르신은 주치의가 처방해준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에 많게는 8시간씩 타기도 했다. 고통을 참으며 매일 4시간 이상 스케이트에 투자한 결과 1년 만에 약에 의존하지 않게 됐고 통증에서도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김 어르신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의 나이 때문에 선뜻 가르치려 나서는 젊은이들이 없었던 것. 이에 굴하지 않은 그는 혼자 동영상을 보며 각종 기술을 섭렵했다. 그는 쉽게 배울 수 있고 기술을 익힐 때마다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점을 스케이트의 장점으로 꼽았다. 김 어르신은 “운동신경이 없어도 이틀만 배우면 앞으로 나아가는 수준이 된다”며 “노인들도 보호장비만 차고 타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했다.
하늘을 나는 꿈을 몸소 실천하는 남성 어르신도 있다. 충남 단양군의 최고령 택시운전사로 활동하는 지재호(83) 어르신이다. 지 어르신은 지난 1998년 충북 단양군 가곡면에 활공장이 생긴 이후부터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했다. 부인과 함께 6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운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아내의 허락 아래 활공을 시작했다.
지 어르신은 처음엔 경험 부족으로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착륙하다 나무에 걸려 몇 시간 동안 매달려 있기도 했고 다리가 크게 다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러글라이딩이 노인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안전한 운동이라고 했다. 지 어르신은 “패러글라이딩은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운동이어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팔순을 넘긴 내가 20년 가까이 탄 게 증거”라고 말했다.
또한 지 어르신은 경비행기에도 도전하고 싶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꿈을 접었고 현재는 에스키모인들이 타는 배인 카약도 즐기며 활동적인 노후의 삶을 살고 있다.
이와 함께 ‘춤은 제비족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에 맞서 댄스에 도전하는 남성 어르신들도 노후생활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대한노인회 예산군지회 신양면분회의 댄스스포츠팀 ‘의좋은 형제’ 이야기다.
지난 1월 15일 충남 예산군 신양면행복경로당에선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전국 유일의 남성 어르신 댄스스포츠팀인 ‘의좋은 형제’가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신양면분회 소속 30여명의 남성 어르신들로 구성된 이 팀은 평균 연령이 85세일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팀을 결성한 이듬해인 2008년부터 충남도지사배 생활체육대회 등을 비롯, 각종 대회에서 20여 차례나 수상할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자랑한다. 한 해 대회에 두세 번 참여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번 상을 타고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경로당 건강프로그램의 일환인 건강체조를 하다 이에 흥미를 느껴 자발적으로 댄스팀을 결성했다. 처음부터 특출한 실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다. 건강체조를 실시한 첫해에는 고령인 탓에 춤은커녕 체조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한 음악에 맞춰 가벼운 율동을 하는 건강체조에 하나 둘씩 흥미를 느꼈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의좋은 형제를 이끌고 있는 윤상구(85) 신양면분회장은 “남자 노인들이 무슨 춤을 추냐고 동네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열렬히 지지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몸풀기체조를 끝낸 어르신들은 이어 4열로 줄을 선 다음 본격적인 연습을 실시했다. 노인들의 애창곡인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흘러나오자 최고령 강갑식(92) 어르신을 필두로 단원들은 제자리에서 가벼운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비록 초등학생들도 쉽게 따라하는 동작으로 구성됐지만 30여명의 어르신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움직이며 몸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나갔다.
강 어르신은 “팀 이름처럼 댄스를 통해 우애를 쌓아 형님, 아우님 하는 사이가 됐다”며 “건강이 허락되는 한 단원들과 계속 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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