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전후 베이비부머들을 ‘단카이(團塊) 세대’라 부른다.
1945년 태평양전쟁 직후 1947~49년 태어난 679만명을 가리키는데(광의로는 1951년생까지 포함한 1092만명), 단카이라는 별칭을 붙인 데는 이들이 단순히 크게 뭉쳐져 있다는 의미와 함께 기존 세대와 상당히 이질적인 특질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퇴적암 일부분에 특정 성분이 크고 단단하게 모여 있는 것을‘노듈(nodule)’이라고 하는데 단괴(단카이)는 노듈을 번역한 용어다.
단카이는 일본 역사상 전쟁을 걱정하지 않고 TV 없는 시대를 모르는 최초의 세대다. 혈연과 지연보다 ‘직연(직장 인연)’을 더 중시했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발전하고 경제 성장이 생활의 편리함과 풍요로움과 직결된다는 것을 체감하며 자랐다.
이 이질적 거대 인구집단은 새 유행과 문화, 그리고 거대 시장을 양산하며 일본 열도의 질적변화를 주도했다. 단카이 세대가 고교·대학 시절일 때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이틴’과 ‘영(Young)’ 붐이 일어 패션과 패스트푸드 산업이 급성장했다.
이들이 결혼하면서 ‘뉴 패밀리’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는 시골 부모와 떨어져 도쿄에 살면서 자녀 2명을 낳고 ‘마이카’를 굴리는 라이프 스타일을 말한다. 마이카의 급증으로 대로변 대형마트도 잇따라 생겨났다.
단카이 세대가 40대 중년에 접어들면서 집을 장만할 나이가 되자 부동산시장에 호황이 찾아온다. 1989~96년 연간 주택 착공 건수는 미국보다 2배, 영국보다 4배나 많았다. 단카이 세대가 자녀 교육에도 목을 매다 보니 수험 시장도 대박이 났다.
직장에서는 이들이 40대 관리직이 되면서 개발 프로젝트가 붐을 이룬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업을 위한 사업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1980년 후반~1990년 초반 일본과 외국에 부동산 개발과 매수 붐이 일어난 것은 단카이 관리직이 주도한 탓이 크다. 이 개발 붐은 토지와 주가를 급등시켜 버블을 만들었다.
단카이 세대가 50대 이후 직장과 시장 형성 주도 세력에서 물러나면서 거품은 빠르게 꺼진다. 부동산시장이 무너지고 불황이 찾아온다. 버블 붕괴는 단카이 세대 퇴장이라는 인구학적 이유 때문이라는 해석도 많다.
2007년부터 정년퇴직을 하면서 사회 주류에서 멀어지던 단카이 세대가 요즘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65세를 넘어서면서 고령사회에 주력 부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카이 노인들은 기존 노인과도 이질적이다. 건강은 물론 돈과 지식도 겸비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는 이미 그들만의 고령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한다’는 평생 현역은 이들에게 당연한 개념이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보다 일 없는 무료함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이들은 안다.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데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또 단카이 세대는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고령자주택’에서 또래와 여생을 즐기고자 한다. 여유가 있는 이들은 입주금 수억 원에 매달 내는 수백만 원을 아까워하지 않는다(영화 ‘시니바나’ 참조). ‘손주 비즈니스’시장도 만들어 냈다. 손주 입학선물, 졸업여행 상품 소비자는 할머니·할아버지다. 테마파크 신상품 안내장도 부모들보다 조부모를 대상으로 한다. 부부와 독립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자녀방을 부부 프라이빗 룸으로 리모델링하는 서비스도 인기다.
자기 장례식을 스스로 준비하는 문화도 단카이 세대들이 만든 새로운 고령자 문화다. 자신이 들어갈 공동 묘를 미리 정하고, 묘지를 함께할 이들과 ‘묘 친구’ 모임을 만들어 죽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인류는 미증유의 초고령사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은 서둘러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후 일본 사회 변화를 주도한 세력인 단카이 세대가 어떤 고령자 문화를 만들어 갈지 주목해야 할 이유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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